공개란

 

 

[ 왜 울고 있어? ]

날아온 편지에 반신반의했다. 세월이 우리를 갈라 놓은 지 벌써 몇 여년 하고도 수십 개월, 세기도 께름칙한 나날들이었는데 고작 이 편지 한 장으로? 그 시절과 똑같이 다시금 모일 수가 있을 것만 같다니. 말도 안 되는 그따위의 희망이 피어오른다니.

“ 바보 같은 희망뿐이니까⋯⋯. ”

확인만 하러 가는 것이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었던 아이들을 어떻게 잊어버릴 수가 있는 건지, 그게 왜 이 편지를 받음과 동시에 일어났는지, 어쩐지 연관이 있을 것만 같아서. 그것만 확인해보는 거야, 오로지 그것만을. 그러나 당도함과 동시에 굳었던 표정이 풀어지고 짙게 내리 앉은 눈그늘은 일렁인다. 추위 때문일지도 모를 코가 붉게 따끔거렸고, 목울대가 껀덕지게 내리 앉는다. 그 바보 같은 희망을 목도하고 말았다. 도착했던 곳에는 모두가 있었다. 그곳에 있었다. 모두가⋯⋯.

 

 

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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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짙은 흑색의 머리카락은 차름하게 내리 앉아 있었다. 눈에 띄는 것은 고동색과 금색이 난잡하게 섞인 눈동자 아래에 짙은 눈그늘이 자리를 잡았다는 것. 외에도 시력이 좋지 못한 탓에 여전한 검은색 안경을, 눈이 쉽게 피로해질 수 있는 것을 업으로 삼았으니 은색의 안경 줄까지 걸치고 있더란다.

날 추워졌으니 하얀색의 톡톡한 목도리를 둘러 온기를 그나마 보존한다. 아래로부터는… 저승사자? 먹색의 유카타, 먹색의 하오리, 먹색의 게타(下駄), 먹색의 목폴라⋯⋯. 한껏 검은색으로 치장한 것이 기이했다. 

(보는 사람 기준) 오른쪽의 손목에는 이젠 넌덜거리고 있는 소원 팔찌 두어 개, 왼쪽의 손목에는 제 이름 넉 자 박혀 있는 은색의 팔찌 하나. 또, 자그마한 붉은 보석에 걸이를 달아 팔찌와 함께 달아두고 있다고. 

 

이름

쇼 사나기 / 書 佐柳

자주 듣는 애칭은 쇼 쨩나기 군. 가족을 제외하고는 근 몇 년간 딱히 들을 일 없던 것들이다. 

 

나이

22세

 

직업

시인

시를 써내려가는 것부터 시작하여 작품을 출간하며 그를 업으로 삼았다. 리듬, 계조 등의 형식적인 법칙이 있는 보통 시와 달리, 운율에 구애받지 않는 것이 어쩌면 혼쇼 사나기와 다르면서도 닮았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니 이 형식은 분명 산문. 심상과 상징의 긴밀한 연결과 호흡으로 연결되어 있는 탓에 드러나는 특유의 문체, 리듬을 살리는 방식 모두 혼쇼 사나기만의 방식으로 개성 있게 두드러진다. 잔잔하나 직관적인 묘사, 서정적이면서도 강렬한 표현법. 혜성처럼 등장한 천재적인 신인, 이러한 작가 세상에 또 없을 것이다⋯⋯. 그러한 과찬들은 적도 없고 그만한 실력도 아니라 부정하겠으나, 어찌 되었든 그 인기가 적지 않았다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이게 웬걸. 혼쇼 사나기, 너 시인이 되었다면서? 까, 까아아아악⋯!!! 당황해 소리 지르는 꼴이 어이가 없다. 자기 이름 넉 자 박아두고 활동하면서? 

 

성별

시스젠더 남성

 

키 / 몸무게

179cm / 보통

 

성격

유약한

어른이 되었으나 어른이 되지 못했다.

졸업 이후 인사도 없이 친구들과의 결별, 누나의 병원을 옮기기 위하여 도쿄로 상경. 여태까지 준비해왔던 공무원 시험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안정성, 체계적인 계획, 정해진 레일 위의 선택들은 모두 한켠으로 미뤄두었다. 오로지 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그 혼쇼 사나기가 '시'라는 학문에 임하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전까지는 가벼운 취미 생활로 임했다면 이제는 하나의 업으로 삼아야 할 때. 처음부터 공부하고 놓친 부분들을 확인하며 배워나가기를 몇 년, 공부할 때에는 바빠서 미처 연락하지 못했고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난 여유에서는 죽은 친구들을 떠올리는 것마저도 서글퍼서 그 누구와도 만날 수가 없었더란다. 어린 마음에 도망치는 것밖에 할 수 없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온종일 울어버리고 말까 봐. 그렇게 혼쇼 사나기, 졸업 이후의 삼 년간은 슬픔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외지에서 홀로 서기를 하자니 위태로웠다. 불확실한 미래에 자신을 내던져 본 경험 없었고, 이제껏 실패가 두려워 실패하지를 않았으니 앞날이 두려웠다. 터놓을 곳도 없었으며 그렇다고 한들 감내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미성숙한 채로 성숙을 감행해야 했던 탓에 숨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면 적어도 미성숙함이 못내 숨겨지지 않을까 싶어서. 옛 혼쇼 사나기에 비해 시끄럽지도, 쉬이 흥분하지도 않았다. 어조도 높낮이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고, 말 한마디라도 아끼려 드는 것이 그 혼쇼 사나기인가? 싶더란다. 차분해졌으나 어른스러움과는 결이 달랐다.

 

억제하지 못하는, 위태로운

위의 연장선, 숨어버리는 일종의 방안으로 혼쇼 사나기는 밖을 나가지 않는 것을 채택했다. 사람 좋아하던 사람이었음에는 틀림없었으나 어쩐지 그런 기분이 들었다. 집 외에는 있을 곳이 없는 것만 같다고. 출간을 이어가는 내내 집에서 칩거하기를 수년, 말 그대로 타인과의 교류는 가족을 제외하고 없다시피 했다.

오랜만의 친구들과 만난 것이 너무 정겨워서, 그동안의 공백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가늠이 되질 않아서, 보고 싶었던 마음은 변함이 없어서, 좋아했기 때문에, 쏟아지는 마음에서 혼란스럽기만 했다. 타인과의 교류가 없으니 그 정도를 가늠하는 건 어려운 건 당연지사였다. 감정 표현에 큰 어려움을 겪는 중이었다. 어떨 때에는 아무런 생각이 안 드는 건가 싶을 정도로 무감하게 서 있는가 하면 또 언제는 펑펑 눈물을 쏟아내고는 했다. 이전에는 분명 '喜怒哀樂에'서 '怒'가 혼쇼 사나기의 9할을 이루었는데, 이젠 또 '喜', '哀', '樂'이 혼쇼 사나기를 가득 채우게 되고 말았다. 중간은 없나?

너희들과 어떻게 이야기를 하고,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어⋯. 혼쇼 사나기는 이 감정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못했다. 모두가 마주한 것은 지금인데 어째 홀로 남았던 삼 년 전의 칩거 생활보다 큰 외로움을 느낀다. 혼쇼 사나기는 과거의 히노데 마을, 2022년도의 히노데 마을에 얽매여 있었다. 어쩔 줄 몰라 한다. 옛처럼 언성을 높이는 것마저 어려워한다.

 

그럼에도⋯⋯.

혼쇼 사나기는 혼쇼 사나기다. 여전히 오지랖이 넓었고, 여전히 자신의 분을 주체하지 못하는 이였다. 여전히 친구 위해서라면 마다치 않고 돌격하는 성질이 강했고, 여전히 잘못됨에 명확히 제 의견 고수하며 화내고 싶어하는 사람이었다. 속내는 못내 여전했다.

 

기타

  • 생일

10월 27일

 

  • 가족관계

부모님과 누나 한 명. 누나의 병원 옮기기 위해 도쿄로 상경, 도쿄서 거주하고 있었던 부모님과 재회 후 몇 년 채 지나지도 않아 독립하였다. 

누나는 혼쇼 시요(本書 志世), 옛 카나에루 고교 3학년과 같은 나이. 중학교까지만 졸업증을 수료하고 이후 병원으로 이송, 그러니 카나에루 고교는 재학해본 적 없었다. 하지만 사람 좋아하는 성질이 혼쇼 사나기와 똑 닮아 친구들을 그렇게 좋아했더란다. 활발했던 성격 덕분에 옛날 중학교 다닐 시절에 교우 관계 정도는 원만했다고.

 

  • 호칭 및 말투

고등학생 때부터 고수해온 대로 모두를 성으로 부르고 있다. 이미 졸업했음에도 호칭은 선배 내지는 동급생. 타인을 이름이나 애칭으로 부르는 건 좋아하기야 하지만, 갑자기 불러버리면 당황스럽지 않겠는가. 그것도 오랜 세월을 그리 부르고 살았는데. 난데없이 이름으로 불러도 되는지 묻기도 모호하니 고착화되었다. 불러줘도 괜찮다 허락하면 혼쇼 사나기 쪽에서 속으로 기뻐하느라 정신없겠으나, 여전히 부끄럼 많은 체질이니 이건 또 이쪽에서 당황할지도.

1인칭은 わたくし, 2인칭은 そなた.

 

  • 현 건강 상태: 조금 연약, 아직도?

여전히 앓고 있는 지병이 있거나 병약한 체질인 것은 아니지만, 쇠약한 것은 맞다. 힘없이 굽은 등 하며, 손이 시리다며 늘 팔짱을 끼고 다니는 자세 하며… 이 때문에 가아끔 지팡이 짚고 다닌다. 걸어 다닐 때 다리에 필요한 힘이 덜 드는 기분이 든다나, 뭐라나. 간혹 옛날 안마 봉 들고 다녔던 시절 마냥 지팡이 들고 쫓아올 때도 있다는 소문이 있다.

 

  • 시집

이전부터 서술했듯, 굉장히 투박하고 직관적인 서술이 특징적이며 잔잔하고 서정적인 흐름을 중심으로 이용한다. 산문시답게 운율과 리듬은 짧게는 한 문장, 길게는 문단으로 넘나들며 같은 구조의 문장 번복을 애용. 작품 내에서 주로 표현 방식이다. 사라진 단어들을 부러 이용해 예스러움을 강하게 살리기도 한다고. 시그니처는 머리말의 '私の兄妹へ'.

 

  • 모리오쿠(森奥) 책방

히노데 마을이 2029년 1월에 재개발 구역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에 크게 반발했던 혼쇼의 조모였으나, 결국에는 이를 막아낼 수가 없어 끝내 정리하게 되었다. 지금은 텅 빈 건물에 여러 책장만 남아 있는 상태. 여러 책은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개중 남은 소수는 조모와 혼쇼 사나기가 함께 살던 집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선관

 

 

 


 

 

 

비공개란

 

 

비설

혼쇼 시요

어느 정도 여력이 갖춰져, 혼쇼 사나기의 도쿄 상경 날 함께 가기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혼쇼 사나기의 죽음으로 홀로 올라가게 되었다. 도쿄의 대학 병원에서 몇 번이고 걸쳐왔던 수술은 큰 문제 없이 무사히 끝났으며 재활 치료 후, 곧바로 퇴원했다. 미처 하지 못했던 공부는 물론 다양한 분야를 도전해보면서 자신의 미래를 확립해나가는 중. 한 마디로 다행스럽게도 잘살고 있다.

 

출간

혼쇼 사나기, 고등학생 3학년 졸업 전날. 혼쇼 시요에게 고했다. 정말 미안하다고, 나는 아무래도 꿈을 써 내려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모든 감정이 뒤얽혀 정리도 채 되지 않은 말들을 터트리고 말았던 것이다. 혼쇼 사나기는 혼쇼 시요에게 너무나도 미안했다. 실족했던 당시 우는 것밖에 해주지 못해서, 너를 두고 나 혼자서만 잘살고 있는 것 같아서, 낫게 해주지는 못할망정 혼자 꿈을 꾸려고 들어서, 이런 내가 너무 미워서, 너를 그곳에 두고 혼자 미래로 나아가려고 하는 것만 같아서.

이후 혼쇼 시요는 그런 혼쇼 사나기를 이해하고 기꺼이 용서해주었으나 아슬아슬하게 난간에 기대고 있었던 탓에 중심을 잃고 추락. 과거를 번복하고 싶지 않았던 혼쇼 사나기의 희생으로 혼쇼 시요 대신 혼쇼 사나기가 사망하게 된다. 그러니 혼쇼 시요의 시각으로 보자면, 혼쇼 사나기의 마지막 유언은 '시를 쓰고 싶어, 꿈을 써내려 가고 싶어.'가 된 셈이었다.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를 시간, 장례식, 나날들⋯⋯. 과거, 혼쇼 시요가 실족했던 것이 지금 이 상황에서도 되풀이되지 않았던 것이 혼쇼 사나기라는 변수 덕분이라면, 죄책감으로 말미암은 자기 파괴적 행위가 되풀이되지 않은 변수 또한 혼쇼 시요라고 하고 싶다. (혼쇼 사나기는 혼쇼 시요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타인에게 규범을 지나치게 강요, 압박하기까지 이르렀으니…)

혼쇼 시요 또한 여지껏 죄책감 없었느냐 묻는다면 그건 또 거짓이었다. 그러나 혼쇼 시요는 자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제 목숨을 위해 한 몸 날린 동생의 행동을 헛된 것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고, 제 목숨을 위해 간절히 뛰어오던 동생을 위해 뭐라도 하고 싶었다. 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떠올린 것이 '시'. 동생의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드러내고자 마음먹었으니 닥치는 대로 혼쇼 사나기의 꿈을 모으기 시작했다. 집 안에 숨겨져 있던 것부터 시작해서 공책 한켠 짤막하게 남겨져 있던 메모, 교내 국어과 대회에 출품하기 위해 작성했으나 이내 마무리 짓는 것을 포기하고 구겨진 종이까지. 이것은 혼쇼 사나기가 써내려 가고자 했던 꿈, 언젠가는 빛을 발했을 하나의 희망. 네가 내 삶을 구했으니 나는 네 꿈을 구하고자 한다. 그렇게 하나하나 모으다 보니 양은 상당했다. 혼쇼 시요는 당시 펑펑 울었다. 이 작품들이 정말 시인되고자 하는 걸 포기하려고 했던 사람의 양이느냐고. 그것은 족히 삼 년간은 매해 출간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혼쇼 사나기의 작품은 혼쇼 시요가 대신 책으로 엮어 내 출간해주고 있었다. 그러니 私の兄妹へ, 이를 나의 형제에게 바친다.

 

"신상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 으음,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아까 이 원고들은 제가 아니라 동생이 썼던 작품이라는 건 알고 계시죠? 저로서 죽은 동생의 작품으로 돈 벌어먹는다는 이야기 듣고 싶지도 않고, 작품을 쓴 건 제 동생이니까요. 오로지 동생의 몫으로 해두고 싶어요. 제 쪽에서 대처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아서 필명을 제외하고는 신원 미상 정도로 해둔 거고요. 그러니 대외적으로는⋯ '부끄러워서' 정도로 해둘까요? 제 동생,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거든요. 분명 그 아이라면 그렇게 대답했을 거예요."

―공개되지 않은 모 잡지사 인터뷰 대화 중 일부― 

 

성격

차분해졌다니, 그러나 어른스럽지 못하다니. 부정적인 성격 변화는 분명 아니라고 일컫을 수 있겠다. 혼쇼 사나기의 이러한 성격 변화는 히노데 마을의 친구들에게서부터 기원한다. 완곡히 표현하는 법 배웠으니 제 마음대로 소리치기보다는 설명과 이해를 우선시했고, 하고 싶었던 것을 이룸과 동시에 정해진 레일만을 달려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깨달아 새로이 희망을 얻었다. 단순하다. 이전과 다르게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고, 여유를 가지고 남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뿐이다.

감정 표현 또한 어쩔 수 없는 현상 중 하나였다. 제 모습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고, 닿을 수가 있으며, 이야기까지 나눌 수 있다니. 절제될 리가 없다. 자그마치 해가 여섯 번 지고 떠올랐다. 억제될 수 없는 원초적인 감정의 정수들이었다.

 

기타

혼쇼 사나기의 목표

미련 없었다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 짧은 생에서 그토록 원했던 건 누나를 향한 죄책감을 내려두는 것, 시를 쓰고 싶었던 것, 꿈을 이루고 싶었던 것, 친구들과 재회하는 것⋯⋯. 혼쇼 사나기는 히노데 마을의 아이들과 재회한 그 순간부터 이미 이루고 싶었던 것은 거진 다 이룬 셈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조금만 더 욕심부릴 수 있다면? 친구들의 편지에 미처 대답해주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장례식에 와준 아이들을 향해 고맙다는 인사 해주지 못한 게 서러웠고, 미래를 향한 약속을 지켜내지 않았던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혼쇼 사나기의 회고는 히노데 마을이다. 혼쇼 사나기의 유일한 후회는 카나에루 고교였으며, 혼쇼 사나기의 마지막 미련은 히노데 마을의 아이들이었다. 그러니 웃으면서 마지막을 약속하고, 서로의 앞날을 기원하며 헤어지고 싶었다. 제대로 된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다. 졸업식도 없이 끝나버린 생애이니 제대로 매듭짓고 싶었다. 우리가 모두 헤어질지언정 여기서 끝을 맞이하는 건 아니라고, 앞으로 더 많은 것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서로의 앞날을 위해 축하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아, 어쩌면 미처 참석하지 못한 졸업식이 내심 걸렸을지도 모르겠다. 이왕이면 꼭 졸업식을 하는 것처럼 끝낼 수 있다면 좋겠다.

 

혼쇼 사나기, 졸업 전날 사망하게 되었다. 

고등학생인 채로 머무르게 되었다. 사회로 발돋움 하지도 못했고 어디로 떠나지도 못한 채 머물러버리고 말았다. 어른이 되었으나 어른이 되지 못했다. 카나에루 고교의 교복이면 분명 의심받을 것이 분명했다. 기억하지 못할 이들에게 애꿎은 기억을 상기시키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으니까. 한참을 히노데 마을에서 머물고 있었으니, 조모와 함께 살았던 집을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쭈뼛쭈뼛, 아무런 설명도 없이 옷 한 벌 빌릴 수 있겠느냐는 물음에 조모는 아무것도 묻지 않으시고 조용히 옛 조부의 옷을 내어 주셨다.

옷에서는 먼지 내음이 묻어났고 크기는 맞지 않아 헐렁한 부분 여럿 있었다. 그러나 혼쇼 사나기는 이 옷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아가, 날도 추운데 몸 따뜻하게 하고 가. 주름진 손으로 둘러준 하얀 목도리는 혼쇼 사나기의 마지막 여정을 위한 든든한 온기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집 앞에서 조모를 한참 껴안고 울었다.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이별 향할 시작이었다.

 

 

 

 


 

 

 

오너란

 

 

오너 생년

성인

 

오너 계정

@VERY_GRANDFA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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